우리 민족끼리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6월은 아픔의 기억으로 남는 달이다. 남북한 전사들이 수없이 전사했으며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6.25 전쟁이 우리 민족만의 아픔으로 남아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많은 젊은이들이 유엔군으로 참전해 귀한 목숨을 이 나라에 바쳤다.
세계 젊은이들이 먼 타국 땅에서 전쟁 속에 전사하여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우리나라에 묻혀 있다. 세계 유일의 UN기념묘지는 1951년 1월 유엔군 사령부에 의해 창설되어 1955년 유엔총회가 국제연합기념묘지로 지명했으며 현재 부산 남구에 14만 5454㎡(4만4000여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유엔군 사령부는 개성, 인천, 대전, 마산 등지에 흩어져 있던 유해를 UN기념묘지로 이장하여 안치했다. 처음에는 미국, 벨기에, 프랑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인도, 필리핀, 태국 등의 11,000위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자국으로 송환되고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터키, 미국, 영국 11개국 2,292명의 전사자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캐나다 판 태극기 휘날리며’가 UN기념묘지에서 열어
봄비가 세차게 내렸던 지난 4월 25일 UN기념묘지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리게 하는 뜻 깊은 행사가 진행되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생사가 엇갈렸던 캐나다 조지프 허시와 아치발드 허시 형제가 60년 만에 UN기념묘지에 함께 잠들게 된 것이다.
허시 형제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동생 아치발드가 1950년 9월 7일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 후 형 조지프는 동생이 걱정이 돼 다니던 회사도 그만둔 채 동생 뒤를 이어 한국 땅을 밝았다. 1951년 10월 13일 동생 아차드는 전우들로부터 허시 성을 쓰는 병사가 쓰러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으나 캐나다에 있어야 할 형이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동생 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형 조지프는 1951년 10월에 UN기념묘지에 안장되었고 동생 아치발드는 1955는 명예 제대하면서 고국 캐나다로 돌아갔다. 늘 형을 그리워하던 동생 아치발드는 한국 방문 기회를 주는 유엔 프로그램을 알았지만 그때는 폐질환으로 장거리 여행을 갈 수가 없었고 끝내 “한국에 있는 형 곁에 함께 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국가보훈처는 아치발드의 딸을 초청했고 그의 딸은 아버지 유해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딸 데비는 “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된 뒤 한국전쟁 경험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며 “그때야 아버지의 손이 왜 항상 검푸른 피멍투성이었는지 알았고 적에 둘러싸인 형을 보호하기 위해 헛주먹질하는 꿈을 꾸다가 자주 깼다”고 전했다.
이처럼 UN기념묘지는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다해 싸웠지만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이 땅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전쟁에 참전했다가 이제 노병은 힘들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한국을 찾아 옛 전우가 있는 UN기념묘지도 찾는다.
(사)대한장례지도사협회 김성익 회장은 최근 해외 장례박람회에 우리나라 장례관계자들의 참석이 해외 여행상품화 되어 있는것을 두고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환경과 조건을 가진 '부산의 유엔묘지등이 소중한 인프라가 되어 그 뜻과 정신 또한 매우 의미가 있다'고 밝히면서 멀지 않는 장래에 부산지역에서도 대한장례지도사협회가 주도하여 '세계 장례박람회를 개최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밝혔다.

UN기념묘지는 유엔이 1964년에 건축한 기념 예배당과 전시실 부속건물 등이 있다. 이 중 예배당은 한국 건축가 김중업씨가 세계 각국 용사들의 종교를 고려하여 현대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설계했다. 또한 한국에서 전사하였으나 묘지가 없는 영국연방군 386명의 용사를 추모하는 기념탑과 UN군 참전기념탑이 있다. 묘지 내의 초목은 대부분 각국 정부, 각 기관과 개인이 기증한 것이며 무덤마다 고인의 기록을 담은 묘비가 놓여 있다.
그리고 1974년 2월 16일 이후 이곳에 전사자의 유해를 봉안한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년공원 국제관리 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MCK)가 관리하고 있다. 사무소는 묘지공원 안에 있으며 건물은 UN이 관장하여 1968년에 건축되었다.
세계 유일의 UN기념묘지는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 국제협력정신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상징적 의미가 큰 유적이다. 6월은 우리 민족으로는 고통의 순간이지만 많은 세계 젊은이들의 고통과 피가 있었기에 지금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하며 그들의 뜻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라도 UN기념묘지를 잘 관리해야 한다.
<상조뉴스 남청렬기자>